‘극한직업’과 ‘열혈사제 2’
영상예술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현대 예술 시점에서는 단 하나의 단어로 장르 구분을 마치지 않는다. 최소 두 가지 단어를 조합하여 해당 영상 예술의 장르를 편의상 구분하곤 한다. 두 가지 이상의 단어를 조합하여 해당 영상 예술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 장르만 듣고 그 영상이 어떤 색깔을 추구하는지 역시 편의상 예측 그리고 가늠할 수 있다. 그 예측과 가늠의 기초가 되는 것은 결국 가장 마지막에 붙는 1차적 장르 구분이다. 기초가 되면서도 잃지 않아야 하고 그야말로 잘 구축해야 하는 것이 그 1차적 장르 구분이고 여기서 금이 가면 그 영상 예술의 평가는 좋은 쪽으로 절대 흐를 수 없다.
주로 그 1차적 구분에 속하는 장르들에는 공포, 로맨스, 시대극 등으로 단어만 들어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정말 많은 1차 장르들이 있지만 쉬워 보이면서도 너무나도 어려운 장르가 바로 코미디다.
왜 어려울까? 코미디는 웃음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코미디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그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극히 유동적으로 변하고 절대 다수의 대중들의 공감할 수 있는 넓은 저변이 확보돼야 하기에 가벼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것이 코미디다.
아래의 두 가지 영상 예술품이 있다. 두 작품은 분명 대놓고 코미디 작품이라 선언했다. 그 두 작품의 평가는 어땠을까? 어떤 코미디 지향성을 가지고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코미디를 선호하는 대중이라면 비교해볼만한 두 작품이다.
한국영화사를 돌이켜봤을 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은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였다. 다양한 설정에서 다양한 유머들이 생산됐고 다양한 감정과 의미까지 대중들에게 선사해 당시 코미디 영화들은 아직까지도 간헐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렇게 한국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가 지나고 한동안 당당히 장르가 ‘코미디’라고 맨 앞에 붙일 수 있는 영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물론 다른 장르들의 비약적인 발전에서 코미디 영화가 입지를 잃은 점도 있지만 시도 자체도 줄어들어 한국 코미디 영화 명맥이 약해져갔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언어의 유머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해가던 이병헌 감독이 ‘극한직업’이라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한국 코미디 영화 역사를 새로이 쓰였다.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등의 작품에 각색으로 참여하며 말의 맛을 익혀갔고 ‘스물’이라는 영화를 직접 쓰고 연출하며 자신의 유머와 영상을 적절히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2019년 ‘극한직업’이라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성공이란 세 글자로 부족할 성공이었다. 최종 관객 동원 숫자가 1626만 명으로 통산 관객 동원 숫자 2위에 오른 것이다. 이 흥행 요인은 아주 단순하다. 이병헌 감독의 유머가 고집스러웠다는 점이다. ‘극한직업’이라는 영화는 이야기 전개 상의 기승전결이 있을 지는 몰라도 감정상의 기승전결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실적 없던 경찰 마약수사반이 우여곡절 끝에 마약사범을 검거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안에 이병헌 감독은 다양한 감정을 넣지 않고 영화 대부분을 코미디, 즉 자신의 유머로 가득 채웠다. 자신이 해오던 내공이 빛을 크게 발한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영화 안에 동의 받을 수 없는 전개도 존재하긴 했다. 그럼에도 이병헌 감독은 자신의 코미디로 영화를 풀어나갔고 결국 대중들이 보고 싶은 영화로 만든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봐도 ‘극한직업’이란 영화는 가볍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코미디, 오락의 힘이다. 그동안 계속해서 추구해오던 이병헌 감독 자신의 내공이 빛을 정확히 발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 터널 뚫고 만난 한국형 코미디의 진한 맛, 아직도 ‘극한직업’에서 만끽할 수 있다.
시리즈가 가지는 메리트는 달콤하다. 같은 시리즈 안에서 전작이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을 일궈냈다면 한 편으로 속편의 입장에서는 그 후광을 조금이라도 입지 않을까 기대한다. ‘극한직업’의 유머 폭풍이 가시기도 전에 SBS에서는 유쾌하면서도 권선징악의 맛을 제대로 선사하는 드라마 ‘열혈사제’를 방영했다.
‘열혈사제’ 역시 2019년 SBS 방송사 자체를 상징하는 드라마가 됐을 만큼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구담구를 카르텔로부터 지키는 ‘구담져스’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열혈사제’를 지탱하는 캐릭터들은 격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결과로 후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 2024년 ‘열혈사제 2’가 돌아왔다. 권선징악의 큰 틀 속에서 유쾌한 구담구 식구들의 코미디를 대중들은 기억하고 있었고 재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재현이 너무 심하게 너무 과하게 돼버려 ‘열혈사제’라는 시리즈의 먹칠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왜 ‘열혈사제 2’는 오리지널 코미디 드라마가 돼려 했을까. 그것도 아주 무리하게. 물론 ‘열혈사제’라는 드라마가 무거운 드라마는 아니다. 악을 퇴치하면서도 구담구 식구들끼리 유쾌하게 으쌰으쌰하는 긍정적인 모습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습만을 맨 앞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혈사제 2’는 오로지 코미디 뿐이었다. 악을 퇴치하러 가는 중에서도 악을 고발하는 중에서도 심지어 악인들마저도 극 전개가 고조될 순간에서도 무리하게 유머를 뱉는다. 아니 다시 말해 어느 상황에서도 ‘열혈사제 2’ 극본을 쓴 박재범 작가는 계속 유머 코드를 삽입했다. 이병헌 감독처럼 말의 깊이도 내공도 느껴지지 않는 부담스러운 코미디의 향연이었다. 그래도 드라마의 막바지에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흑화 전개가 이어져 ‘열혈사제’ 시리즈 특유의 통쾌함이 느껴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끝까지 무리한 코미디의 연속이었다. 지칠 정도로.
아마 ‘열혈사제 2’는 실패한 후속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막바지 드러난 설정으로는 시즌 3에 대한 가능성이 충분히 열린 것 같다. 부디 코미디 드라마의 대표작이 되려는 무리수는 접고 ‘열혈사제’스러운 유쾌함과 통쾌함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도 아직 ‘열혈사제’라는 네 글자는 대중들에게 유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