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과 김도영
이종범과 김도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KBO의 40년 역사를 통틀어봐도 최고 명문구단은 해태에서부터 기아까지 이어져 오는 타이거즈다. 이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여러 기록들이 있다. 12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모두 우승한 기록,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모두 우승을 경험해본 구단이라는 점 등은 명실상부 타이거즈가 KBO의 최고 명문 구단임을 입증한다.
또 하나 주목해볼만한 기록이 있다. 2024년을 기점으로 1위로 올라선 타이거즈의 기록이 있다. 통산 MVP 배출 횟 수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2023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9회로 같았는데 2024년 다시 한 번 타이거즈가 MVP 선수를 배출함으로써 10회, 1위로 올라섰다.
그렇다 타이거즈는 가장 많은 횟 수의 MVP를 배출한 구단이다. 김성한, 선동열, 윤석민, 양현종이 타이거즈 MVP 명맥을 이어왔지만 2024년에는 유독 두 선수가 눈에 들어온다. 30년의 간격을 두고 탄생한 두 MVP는 누구인가.
1994년 KBO의 우승은 타이거즈가 아니었다. 신바람 야구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한 구단은 LG 트윈스였다. 하지만 또 MVP는 LG 트윈스에서 배출되지 않았다. 1994년은 누가봐도 이종범의 해였고 이종범 말고서는 어느 누구도 MVP 자리를 탐할 수 없었다.
그냥 기록만 나열해보자. 타율 3할9푼3리, 196 안타, 113 득점, 84 도루, 1.033의 OPS 등 1994년의 이종범은 단순 그 해에 빛난 것이 아닌 KBO 역사에 길이 남을 시즌을 만들어낸 것이다. 후에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사실 4할 타율, 200 안타, 100 도루를 모두 노렸다고. 하지만 시즌 말미 잘 못 먹은 소생고기가 문제였다고.
무엇보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보통 타자들의 기록은 시즌 초반 작은 모수로 인해 고타율을 비롯 높은 기록을 찍고 시즌이 진행되며 서서히 내려오는 흐름을 가진다. 하지만 1994년 이종범의 기록은 그렇지 않았다. 쌓을 것은 꾸준히 쌓고 특히 타율은 오히려 시즌이 흐를수록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그려 리그를 지배해버렸다. 그렇게 이종범은 데뷔 단 2시즌만에 KBO를 정복했다.
이후로 이종범은 타이거즈의 상징 그 자체가 돼버렸다. 경력 중간 물론 구단 재정 악화로 일본리그도 경험해보지만 그 시기를 제외하고는 종신 타이거즈맨으로 선수생활을 채웠다. 1990년대는 젊은 패기로 리그를 지배했다면 일본을 다녀오고 나서는 외야수로 전향해 다시 한 번 리그를 정복했다. 특히 2003년은 165 안타, 20 홈런, 50 도루 등의 뛰어난 활약을 보여 자신으 시대가 아직 저물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워낙 1994년의 임팩트가 강했던 이종범의 존재였기에 타이거즈팬들도 1994년의 이종범까지 재림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바라지는 않았다. 단지 오랜 시간 야수진에 버팀목으로 자리해줄 그런 선수를 원했다. 하지만 그 버팀목에는 성에 안 차 1994년의 이종범 그리고 이후의 이종범을 기대케 하는 선수가 등장하고야 말았다.
2022년도 드래프트 시즌 당시 기아 타이거즈의 단장 조계현 감독은 고민이 많았다.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으로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결국 야구는 투수놀음이기에 150km/h 이상 구속을 뿌릴 수 있는 문동주로 가야하는가, 당장 야수진이 얇기에 제2의 이종범이라 불리는 김도영으로 가야하는가. 당시 단장 조계현 감독의 선택은 김도영이었다.
그렇게 2년 뒤 조계현 단장은 타이거즈팬들로부터 찬양받기에 이른다. 왜? 김도영이란 선수가2024년 KBO 리그를 삼켜버렸으니까. 부상과 부담감 그리고 리그 적응기간으로 김도영은 2022년과 2023년을 기대에 미치지 못 한 결과로 보내야했다. 프로 3년 차 더 이상 김도영에게 기다려줄 팬들은 없었다. 2024년 시작도 불안했다. 시즌이 개막되자자마자 좀처럼 김도영은 타격감을 찾지 못 했고 타자에게 입스가 온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하지만 스타는 슬럼프를 직접 극복해야한다. 김도영은 스타였다.
4월에 들어서자마자 김도영은 불을 뿜기 시작했다. 4월 한 달 동안 KBO 최초 10 홈런 10 도루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세우더니 계속해서 리그를 삼켜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도영은 시즌이 끝나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야 말았다. 189 안다, 10 3루타, 38 홈런, 109 타점, 143 득점, OPS 1.067 등. 그야말로 몬스터 시즌이 아닐 수 없었다. 40-40에 도전하는 기세를 바탕으로 하여 홈런과 OSP에서만큼은 1994년 이종범의 기록을 앞서기도 했다.
김도영을 보유한 타이거즈는 다른 선수들의 활약에 힘 입어 2024년 KBO 통합 우승을 이룰 수도 있었다. 단순히 성적만에서만 2024년의 김도영의 파급력이 뛰어났던 것이 아니다. ‘그런 날’, ‘도니살’ 등 김도영을 주인공으로 하는 밈들이 곳곳에서 생겨났으며 광주는 곧 김도영이라는 신드롬까지 일기도 했다. 올해 특히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야구가 흥행이라고 하는데 이 결과에 김도영의 지분은 가히 절대적일 것이다.
김도영이 일궈낸 몬스터 기록, 김도영을 중심으로 이는 문화적 파급력 등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2024년 MVP는 김도영에게로 돌아갔다. 앞서 말했듯 타이거즈팬들은 이렇게까지 바라지 않았다. 1994년 이종범이 실재했지만 다시 바라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현실의 눈을 갖자고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이종범에 버금가는 선수가 실제로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제 김도영이고 타이거즈팬들이고 딱 한 가지만 서로 갖추면 된다. 타이거즈팬들은 김도영이 꾸준히 잘 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를 해줘야 할 것이고 김도영은 그 격려와 지지에 보답해 올해와 같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앞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디 팬들과 김도영이 서로 롱런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