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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손과 코미어

doublec 2024. 11. 24. 21:32

  지난 20241117UFC 309가 개최됐다. 이 날의 마지막 경기는 그렇게 수 없이 떡밥이 뿌려졌었고 격투기 팬들이 너무나도 오래 기다려왔던 존 존스와 스티페 미오치치 간의 헤비급 경기였다.

  자세히 따져보면 상당한 사전 드라마가 길게 깔린 경기였다. 존 존스의 헤비급 월장 선언부터 해서 그에 따른 상대는 과연 누가 되야하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무지 많았었다. 순리대로라면 스티페 미오치치가 상대가 되지 않았어야 했다. 이 전 존 존스와 맞붙었던 시릴 간도 예정 상대가 아니었다. 원래는 현재 UFC를 떠난 프란시스 은가누가 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아주 이례적으로 UFC 헤비급 챔피언의 자리에서 프란시스 은가누는 타 단체로 이적해버렸다. 존 존스 헤비급 월장 시기와 맞물려 가장 먼저 상대하고 싶다고 나섰던 선수가 프란시스 은가누였다. 또한 당시 프란시스 은가누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을 상대라는 헤비급 랭커들을 모조리 꺾고 스티페 미오치치에게도 복수를 거둬 챔피언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UFC 회장 데이나 화이트는 굳이 챔피언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UF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면서까지 존 존스를 헤비급으로 월장시켰을까. 여기까지 질문을 던져만 봐도 답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여하튼, 존 존스는 UFC 309에서 자신을 가장 위협할 수 있는 상대로 그나마 1순위로 꼽혀왔던 스티페 미오치치와 대결했다. 존 존스의 손 쉬운 승리였다. 은퇴를 선언한 바 있고 고령의 스티페 미오치치에게 존 존스는 너무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안티 존 존스, 스티페 미오치치 지지 입장에 서보자. 그렇다면 이번 경기에서 스티페 미오치치에게서 최소한 두 선수의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존 존스를 가장 위협했던 그 둘.

 

  2008UFC에 데뷔한 이래로 가장 각광받는 유망주로 주목 받은 존 존스였다. 스테판 보너, 브랜든 베라, 블라디미르 마츄센코, 라이언 베이더까지 이름값 있는 선수들에게 모두 승리하며 당연히 타이틀샷에 도전할 수 있는 명분까지 고속으로 획득했던 존 존스였다.

  어쩌면 궁합에서도 당시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마우리시오 쇼군후아(이하 쇼군)는 존 존스에게 먹잇감이 되기 딱 좋은 스타일이었다. 굳은 레슬링 스타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유연한 그래플링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정교한 복싱스킬은 갖추지 못 한 쇼군은 존 존스에게 위협이 되지 못 했다. 더군다나 미들급이 오히려 적정 체격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의 쇼군이었기 때문에 신장에서나 리치에서나 자신을 압도하는 존 존스의 위압감은 더욱 거대했을 것이다. 그렇게 존 존스는 쇼군을 3라운드 TKO로 꺾고 챔피언 등극에 성공한다. 이후에도 퀸튼 람페이지잭슨, 료토 마치다, 라샤드 에반스, 비토 벨포트, 차엘 소넨까지 UFC 라이트헤비급을 자신의 천하로 만들었다.

  다른 한 쪽에서 폭풍을 몰고 성장하는 선수가 있었다. 맷 해밀, 블라디미르 마츄센코, 티아고 실바 그리고 존 존스가 이기고 챔피언이 된 쇼군까지 꺾으며 존 존스의 새로운 대항마가 된 선수가 바로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이하 구스타프손)이었다. 존 존스의 다음 상대는 구스타프손으로 결정됐다.

  이 둘의 경기는 유독 그림이 되는 경기었다. 무슨 말이냐면, 이 둘은 피부색을 제외하곤 상당히 닮아있었다. 신장은 존 존스가 193cm, 구스타프손이 196cm으로 라이트헤비급 당시에서 큰 축에 속했다. 둘은 긴 리치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수준급의 레슬링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닮아있는 선수들이 붙기도 쉽지 않다는 사전 의견도 일곤 했다.

  경기 내용은 더욱 그랬다. 존 존스는 처음으로 당황한 듯 했다. 자신보다 큰 선수가 자신의 특기인 긴 리치와 강한 레슬링이 그리 쉽게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스타프손이 존 존스에게 사상 첫 테이크다운 허용을 일궈내며 존 존스의 천하가 끝나는가싶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구스타프손은 타격을 허용하기도 하고 테이크다운 마저 허용하며 결국 존 존스에게 판정패했다.

  하지만 주목할 상황은 경기 후였다. 판정승을 일군 존 존스의 허리엔 챔피언 벨트가 다시 감겼었지만 얼굴은 패자의 얼굴이었다. 흉터와 출혈로 도저히 승자의 얼굴로 판단하기 힘들었었다. 반변 구스타프손의 얼굴은 백인의 얼굴이래도 너무 깨끗했다. 사진만 보면 승패가 잘못 된 거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안티 존 존스 입장에서 모두가 그리워한다. 2013년의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의 모습을. 거의 백중세를 이루던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의 모습을. 그 모습을 2024년의 스티페 미오치치에게서 바랬을 텐데 그러기엔 스티페 미오치치는 늙어버렸다. 어쩌면 존 존스와 데이나 화이트가 늙기를 기다렸을지도?

 

  또 한 명 존 존스의 라이벌을 꼽으라면 단연 다니엘 코미어(이하 코미어)일 것이다. UFC 역사상 사이가 안 좋은 라이벌들이 여럿 있는데 이들도 아마 대표적인 사례로 속하지 않을까싶다.

  존 존스가 구스타프손을 꺾고 다음 글로버 테세이라까지 연달아 꺾으며 계속해서 UFC 라이트헤비급은 자신의 세상이고 더 이상 적수가 없을을 알리고 있었다. 아니다. 최강일지 몰라도 적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스트라이크포스 헤비급 그랑프리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강자로 올라선 미국 아마추어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 다니엘 코미어였다.

  존 존스와 코미어의 첫 번째 대결은 20151UFC 182에서 치러졌다, 비록 존 존스에 비해 신장이나 리치는 상당히 작으나 특유의 레슬링과 투박한 타격은 존 존스에게 어느 정도 위협이 됐다. 하지만 챔피언이란 산은 높고도 험했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레슬링 타격에서도 서서히 밀리며 그렇게 존 존스와의 첫 번째 석패로 끝났다.

  이렇게 한 번으로 끝이 나면 이들을 악연이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코미어와의 1차전 직후 존 존스는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UFC 라이트헤비급 자리가 공석이 됐다. 이후 코미어는 앤소니 존슨로부터 승리를 거두어 UFC 라이트헤비급 왕좌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그리고 존 존스에게 가장 위협을 선사했던 구스타프손도 꺾어 존 존스가 없는 자리의 최강자로 코미어가 확증됐던 201510월의 UFC 라이트헤비급이었다.

  UFC 200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연히 UFC는 힘을 주고 싶어했다. 사고로 이탈한 최강자 존 존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코미어. 이 둘의 2차전은 누가봐도 흥행이 보장되는 경기었다. 하지만 경기 3일 전 또 존 존스가 사고를 치고 마는데, 도핑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 한 것이다. 결국 코미어는 UFC 200에서 앤더슨 실바와 논타이틀 매치로 그야말로 매가리 없는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그렇게 존 존스와 코미어는 20177월이 돼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사건을 거치고 다시 만나는 둘이었기에 둘은 사전 도발을 상당히 주고 받으며 옥타곤에서 재회했다. 장기간 경기를 치르지 못 한 존 존스, 챔피언의 자리에서 존 존스를 맞는 코미어였기에 1차전과 다른 결과가 날 수도 있는 예상도 한 측에선 일곤 했다.

  하지만 존 존스는 존 존스였다. 긴 리치를 활용한 타격과 오블리킥의 조화는 코미어를 잠식하기 충분했고 결국 3라운드 TKO패로 코미어는 패배하며 다시 존 존스에게 챔피언 벨트를 넘겨야만 했다. 경기 후 코미어는 이제 더 이상 존 존스의 라이벌로 불릴 수 없다는 발언까지 하며 체념의 감정으로 존 존스와의 라이벌리를 직접 종결시켰다.

  아마 현재로써는 찾기 힘들 것이다. 이만큼 근접했던 존 존스의 라이벌로 평가받는 선수가 없을테니 말이다. 아니다. 역사는 항상 1인자의 절대성을 영원토록 허용치 않는다. 언제든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역사를 쓰면서 세상만사는 흘러가게 돼있다. 존 존스도 언젠가는 무너진다. 앤더슨 실바도 예멜리야넨코 표도르도 조제 알도도 드미트리우스 존슨도 완벽함이 영원하지 않았다. 존 존스도 무너져야 한다. 온갖 특혜를 받고 온갖 사고를 쳐가면서 UFC를 넘어 종합격투기에 해만 끼치는 존 존스는 무너져야 한다. 비록 구스타프손, 코미어, 스티페 미오치치는 존 존스를 향한 응징에 실패했지만 분명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존 존스를 종합격투기 세계에서 척결시킬 것이다.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