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알도와 맥스 할로웨이
1년 전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울었다.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왜? 한 명의 이름으로 모두 설명 가능하다. 바로 정찬성.
정찬성이 글러브를 벗은 지 벌써 1년이 됐다. 아직 그의 은퇴에 실감하지 못 하는, 동의하지 못 하는 팬들이 많다. 왜일까? 그만큼 그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로 세계 격투기 추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프라이드 FC에서 UFC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 시장의 이동은 상당히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더 이상 격투기라고 하면 사각의 링은 점차 사라져갔고 어떤 형태로든 철근으로 둘러싸인 케이지가 세계 격투기 장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 변화는 또 선수들의 격투 스타일 고착화를 낳았다. 링 가장자리에서 경기가 진행되면 링 중앙으로 선수들의 위치를 옮기는 심판의 진행방식이 사라지고 케이지 구석에서 경기가 진행되든 경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이는 결국 레슬링 스타일을 선수들이 주로 선호하게 되는 일부 고착화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정찬성이 존재했다. 정찬성은 레슬러가 아니다. 오히려 레슬링이 약점이 선수다. 그런 선수가 동양인의 신체로 UFC라는 세계 최고 격투단체에서 2번이나 챔피언십을 치뤘다. 자신의 본능적인 타격감으로, 능숙한 그래플링으로, 이 두 가지 장점을 적절히 배합한 경기 운영으로 절대적인 존재감을 레슬러들이 판을 치는 현대 격투계 흐름을 직접 거스르며 뽐내온 것이다.
그렇게 상징적이고도 유의미했던 정찬성이 떠난 지 1년이 됐다. 그의 존재를 기억하며 그가 가장 빛났던 두 경기를 다시 감상해보자. 그 두 경기는 어떤 경기일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정찬성이 은퇴 기점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3년의 UFC 페더급은 가장 선수층이 두터웠던 체급으로 기억된다. 당시 UFC 페더급 챔피언 조제 알도는 WEC 때부터 극강의 이미지를 쌓아왔으며 UFC 입성 이후에도 마크 호미닉, 케니 플로리안, 채드 멘데스, 프랭키 에드가 등의 이름값이 높았던 도전자들을 모조리 꺾어 UFC 페더급의 폭군 챔피언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던 와중 조제 알도는 상위 체급인 라이트급에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던 앤소니 패티스와의 대결이 확정적으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앤소니 패티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조제 알도의 상대가 갑자기 비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랭킹이 3위였던 정찬성보다 랭킹이 2위로 높았던 리카르도 라마스가 차기 조제 알도의 상대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UFC의 회장 데이나 화이트는 보다 높은 인기도를 가지고 있고 보다 높은 흥행을 위해 차기 조제 알도의 상대를 정찬성으로 정해버렸다. 어느 한국 선수도 오르지 못 한 최초의 UFC 한국인 타이틀전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극강의 존재감을 선보이던 조제 알도였기에 당연히 승리는 조제 알도 쪽으로 더 흘렀다. 하지만 막상 조제 알도와 정찬성의 경기를 확인해보니, 절대 조제 알도의 일방적인 승기로 흐르지 않았다. 조제 알도의 타격을 경계하면서도 정찬성은 특유의 원거리 좀비 타격을 섞어가며 조제 알도에 당당히 맞섰다. 경기 중간에는 조제 알도에게 달려가 플라이 니킥도 시도하는 등 백중세의 타격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에 당황한 조제 알도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스텝은 케이지 바닥에 붙었고 타격이 아닌 레슬링으로 경기 운영 기조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4라운드가 도래했고 주먹을 섞던 중 정찬성의 어깨가 탈구 되고, 이를 알아챈 조제 알도는 탈구된 어깨를 킥으로 몇 차례 공격했다. 그렇게 쓰러진 정찬성을 추가 타격한 뒤 심판의 TKO 선언을 얻어냈다.
참으로 아쉬운 결과였다. 차라리 모든 것을 쏟은 경기력으로 명확한 승패가 갈린 결과였다면 이렇게 아쉽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얻기 힘든 타이틀샷이기 때문에. 동양인으로 정상까지 오르기가 너무나도 힘든 UFC 세계라는 것을 알기에. 더군다나 한국인 정찬성이기에. 부상으로 패배를 했다는 사실에 모든 격투 시선들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바꿔 말해, 정찬성은 명확히 조제 알도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다. 이 일말의 가능성 덕분이었을까? 정상을 향한 정찬성의 여정은 지속됐고 은퇴전까지 정찬성의 이름은 랭킹 높은 곳에서 항상 확인할 수 있었다.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이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었다. 9년 후, 정찬성은 꾸준히 컨덴터급으로 기량을 유지한 결과 2022년 4월 9일 UFC 273에서 당시 UFC 페더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와 생애 두 번 째 UFC 타이틀샷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9년 전 조제 알도와의 대결보다 더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리치도 더 길고 신체적 우위도 정찬성이 가졌음에도 완벽한 정찬성의 패배였다. 어느 면만큼은 앞섰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패배였다. 이 결과에 정찬성은 은퇴의 감정까지 다다르는 인터뷰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찬성은 은퇴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챔피언 로드를 밟았다. 그렇게 2023년 여름이 도래했다. 대결이 꾸준히 예상됐었고 역시나 페더급 챔피언급으로 지속적으로 분류되던 맥스 할로웨이와의 경기가 2023년 8월 26일 확정됐다.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 두 선수의 만남이라, 확정 순간 세계 모든 격투팬들이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시간이 다가왔고, 유난히 정찬성의 등장음악 ‘Zombie’가 깊고 구슬프게 들리는 것 같았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정찬성과 맥스 할로웨이는 간 볼 의도 자체가 없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서로 주먹을 섞기 바빴고 다소 맥스 할로웨이의 타격이 정확했다. 2라운드 때는 그 격차를 맥스 할로웨이가 다스 초크로도 연결시켜 정찬성의 탭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까지 몰고 갔다. 그만큼 그 다스 초크는 상당히 깊고 정확하게 구사 됐다. 하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그 다스 초크를 풀었다. 그래도 그 다스 초크의 영향이 컸던지 정찬성의 스텝은 무뎌졌고 타격 역시 맥스 할로웨이가 주도해갔다.
3라운드로 넘어가고서는 정찬성의 큰 결단이 보였다. 정찬성의 상징이자, 정찬성을 만들어준 좀비 스타일에 시동을 걸었다. 무조건 직진 스텝을 밟았으며 근거리, 원거리 할 것 없이 맥스 할로웨이를 맞추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맥스 할로웨이는 관록의 타격가다. 그러한 정찬성의 좀비 스타일은 오히려 틈을 노리기 쉽다. 후진 스텝을 밟으며 맥스 할로웨이는 정찬성의 안면에 정확한 카운터 훅을 꽂으며 정찬성을 KO시켰다. 그렇게 좀비는 끝났다.
경기 후, 맥스 할로웨이는 최고의 경기를 같이 만들어준 정찬성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정찬성도 선언했다. 은퇴하겠노라고. 그 것이 정찬성의 UFC 마지막이었다. 글러브를 벗고 옥타곤을 나와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정찬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도 프로레슬링도 연출하지 못 할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었다. 관객 모두가 ‘Zombie’를 떼창하고 승자인 맥스 할로웨이가 아니라 패자인 정찬성이 모든 주목을 받는 모습. UFC 역사에서 이런 은퇴 순간은 없었다.
아직도 몇몇 남자들은 이 영상을 돌이켜보며 눈물을 훔친다는 것 다 안다. 우린 아직 온전히 정찬성을 떠나보내지 못 하고 있다. 좀비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그, 정찬성이 우린 아직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