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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과 ‘폭군’

doublec 2024. 8. 19. 21:00

  사실 예술이란 것에서 영역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 예컨대, 겉보기엔 유화 작품이지만 미디어 기법을 더해 움직임을 가능케 했다면 그것은 미술인가? 영화인가? 쉽게 구분 지을 수 없다. 이러한 일환으로 현대 영상 예술에서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 영화와 드라마를 담는 플랫폼도 이제는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영화를 보려거든 반드시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되고 드라마를 보려고 반드시 TV 앞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물론 이 경계를 무너뜨린 1등공신은 OTT일 것이다. 영화관처럼 장소의 제약도 없으며, TV처럼 시간의 제약도 없다. 그저 공개되면 원할 때 언제 어디서든 보면 된다. 이 사회적 현상이 확대되면서 연쇄적으로 또 하나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감독들이 이제는 드라마라는 단어로 한정짓기도 아쉬운 시리즈물 연출에 도전하고 있다.

  연출 스타일로는 어느 누구도 따라하지 못 할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두 영화감독이 OTT가 열어버린 영상 예술 경계의 타파를 제대로 누리며 시리즈물 연출 데뷔를 알렸다. 그 두 감독은 윤종빈과 박훈정이다.

 

  먼저 윤종빈이 시리즈물 첫 연출을 시도했다. 그 시리즈물의 이름은 수리남이었다.

  ‘수리남은 지극히 윤종빈스러운 작품이었다. 윤종빈 감독이 그동안의 영화 연출에서 보였던 모든 매력을 수리남이라는 시리즈물에 담아버렸다. 영화보다 시간적인 이유로 연출의 여유가 있는 시리즈물에서 윤종빈 감독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영상 연출 세계를 펼쳤다.

  먼저, ‘수리남은 재밌다. 단순히 범죄물이 아니다. 범죄오락물이라는 장르가 더 맞을 것이다. 마약범죄가 수리남의 중심소재지만 수리남의 각본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이 지점에서 1차적 오락적 재미가 발현된다. 예상되는 각본 전개를 뒤엎고 마지막까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긴장감은 윤종빈 특유의 오락연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생동감 또한 수리남을 지탱했다. 어쩌다 마약범죄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강인구, 선한 목사인 줄 알았지만 마약범죄의 핵심인물 전요환, 매번 상대의 식사 여부를 묻는 국정원 요원 최창호, 속내를 알 수 없는 변기태, 그저 브레인의 이미지인 줄 알았지만 극의 반전을 주는 데이빗 박 등. ‘수리남는 색깔 뚜렷한 인물들이 넘쳐난다. 인물이 많으면 때로는 과하게 느껴져 인물들의 매력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극이 끝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수리남은 이 인물들이 다 기억이 난다. 이 것은 윤종빈 감독 연출의 승리라고는 해석할 방도가 없다.

  각본의 재미, 인물들의 재미 등이 적절히 배합되니, 윤종빈 감독 특유의 연출을 드라마에서도 느끼는 최종적 재미까지 도달해 수리남는 그야말로 볼만한시리즈물이 된 것이다. 더불어 윤종빈 감독은 성공적 시리즈물 연출 데뷔까지 이뤄냈다.

  윤종빈 감독은 차기 연출작도 시리즈물 나인 퍼즐로 정했다. ‘수리남에 이은 성공을 맛보길 바란다. 그리하여 영화와 시리즈물 모두를 다룰 줄 아는 대한민국의 대표 영상 감독이 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대중들도 윤종빈 감독의 시리즈물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박훈정 감독 역시 윤종빈 감독에 못지않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쥔 감독이다. 특히 박훈정 감독은 시작을 각본가로 시작했기에 윤종빈 감독에 뒤처지지 않을 오락성과 독창성을 가진 각본색을 가지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부당거래만 봐도 박훈정 감독의 각본색은 짙게 느껴진다. 박훈정 감독은 신세계를 출세적으로 삼게 됐고 본격적으로 각본가임과 동시 연출가로서 자신의 색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박훈정 감독의 연출과 각본은 영화 마녀를 연출하면서 변곡점을 가지게 된다.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박훈정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이 창조한 마녀 유니버스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마녀와 후속작 마녀 Part2. The Other One’까지 개봉하는데 성공해 마녀 유니버스를 확장하고 있었다. 단순히 2개의 영화로 유니버스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부족하다. 그리하여 보다 넓은 연출과 넓은 세계관 전개를 위해 영화가 아닌 시리즈물 연출을 박훈정 감독은 선택했다. 새로운 마녀 유니버스작품의 이름은 폭군이었다.

  사실 온전한 런닝타임만으로는 영화로 볼 수도 있다. 3시간이 안 되기 때문에. 하지만 시리즈물이다. 챕터 별로 핵심인물인 채자경, 임상, 최 국장, 폴의 서사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박훈정 감독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영상 연출은 유지됐다.

  무엇보다 박훈정은 각본가로 시작한 감독 아니겠는가. 4개의 회차 안에 마녀 유니버스안의 폭군이란 시리즈물이 읊고 있는 독창적 시나리오가 존재했다. 비현실적인 전개가 시나리오 곳곳에 배치된 걸 알면서도 몰입하게 되는 박훈정 특유의 각본이 여전히 폭군안에 살아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막바지에 폭발하는 카타르시스는 액션, 분위기, 연기 모두가 적당히 배합된 느낌을 받았다.

  4개의 회차가 끝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여 한 때 대호’, ‘브이아이피로 연달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있다. 그 시절 박훈정 감독을 바라보며 고집은 곧 상업적 실패에 반드시 귀결되는가에 동의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고집을 꺾지 않고 박훈정 감독은 기어이 폭군을 보다 자유로운 OTT 시리즈물 플랫폼 위에 만들어낸 것이다. ‘폭군으로 하고싶은 거 다 한 것 같은 박훈정의 감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폭군정도라면 박훈정 감독 필모그라피에 앞으로 자주 언급될 작품이라고 본다. 시리즈물 데뷔작으로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니까. 부디 영화광들이 떠올리는 박훈정 감독의 예술색을 박훈정 감독 본인이 잃지 않기를 바란다. ‘폭군이란 결과물 보니까 그럴 리는 없어 보이지만. 영상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시대에서 부디 박훈정 감독은 자신의 예술색을 맘껏 펼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