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와 ‘파일럿’
2012년 3월, 그 때의 충격을 잊지 못 한다. 물론 뮤지컬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지만 모든 배우들이 뮤지컬, 영화, 드라마계 모두에서 성공하지는 못 한다. 그러나 그는 충격적인 증명과 함께 2012년 3월 일약 대한민국 배우계에 충격을 놓고야 말았다. 그의 이름은 조정석이다.
‘건축학개론’은 이제훈과 수지 만의 영화가 아니다. 조정석, 그의 영화기도 하다. ‘납뜩이’라는 이름으로 친구 승민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욕도 서로 해대고,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납뜩이’는 부정할 수 없는 조정석의 ‘출세역할’이다. 그렇게 익살스럽고 웃기던 ‘납뜩이’ 조정석은 TV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상의 대한민국 왕실 근위 제2중대장 은시경의 모습으로 ‘납뜩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조정석은 연기하고 있었다. 특히 국왕 이재하를 대신에 총격에 맞고 순직하는 장면은 ‘더킹 투하츠’라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떠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후 조정석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며 소위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로까지 발돋움한다. 그 ‘티켓파워’를 두 개의 코미디 영화에서 증명하기 시작했는데, 그 두 작품이 ‘엑시트’와 ‘파일럿’이다.
먼저 말하자면, ‘엑시트’와 ‘파일럿’ 절대 쉽지 않은 코미디 영화였다. 조정석 정도의 연기 테크닉이 있어야 감당 가능한 영화임이 분명했다. ‘조정석표 코미디 영화’인 ‘엑시트’와 ‘파일럿’에서 조정석은 어땠기에 자신의 ‘티켓파워’를 증명했는지 살펴보자.
사실 ‘엑시트’의 제작사였던 ‘외유내강’이나 ‘필름케이’에서는 사실 온전히 확신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임윤아는 영화 필모그래피상 자신이 직접 주연으로 나선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조정석 역시 주연으로 전면에 나서 흥행을 기록해본 적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손익분기점이 350만 명이었음에도 거의 1천만 명에 가까운 약 930만 명을 끌어 모았으니 초대박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흥행에 어떤 요소들이 작용했던 것일까?
‘엑시트’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사건의 서사 묘사가 그리 깊지는 않다. 하지만 ‘엑시트’라는 제목답게 재난에 두 남녀 주인공이 몸을 불살라 탈출을 이끌고야 마는 ‘맨몸액션’이 ‘엑시트’의 전매특허가 됐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그저 몸으로 타오르고 날라다지는 어드벤처생활밀착액션(?)은 ‘엑시트’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조정석이 이끌고 임윤아가 따라오는 ‘엑시트’만의 유머코드는 부담 없이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조정석의 연기에서 피어나는, 분명 잘생긴 남자 주인공인데 찌질한 설정을 너무나도 익살스럽게 소화해 대중들의 짠한 공감을 샀다. 이는 장담컨대, 조정석 밖에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엑시트’는 임윤아의 영화이기 전에 조정석의 영화로 불려야 하는 것이다.
대중들이 ‘엑시트’를 보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석표 코미디’는 믿고 봐도 된다고. 조정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로 내세워도 되겠다고. 조정석의 다음 코미디를 기대하겠노라고.
5년이 흘렀다. ‘엑시트’ 다음 조정석은 다시 코미디 영화로 영화계에 돌아왔다. 자신의 코미디 연기 능력, 자신의 ‘티켓파워’를 재차 증명하고 싶었나보다. 이번 ‘조정석표 코미디’ 영화의 제목은 ‘파일럿’이었다.
상당히 어려운 설졍이다. 1류 비행사였던 한정우가 여장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다시 항공업계에 재취업한다는 설정. 가히 판타지급이다. 이 어려운 사전 설정을 조정석은 어떻게 원톱 주연으로서 이끌고 대중에게 어필하겠다는 것인가? 무리수가 아니냐는 걱정도 사실 한켠에선 존재했다.
‘파일럿’이라는 영화를 하나하나 뜯어 평가해보자면 그리 잘 만든 영화라 분류하긴 힘들다. 사전에 세워둔 설정으로 영화를 어떻게든 굴러가게끔 서사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곳곳에 이해되지 않는 연출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라지만 충분히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은 ‘정치적 올바름’은 그 배치에 대해 다소 의문을 낳기도 했다.
이렇게 나쁘게 본다면 단점이 눈에 바로 띄는 영화가 ‘파일럿’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2024년 31주차 박스오피스 1위는 ‘파일럿’이다. 손익분기점 240만에서 이미 1주 만에 170만 명을 넘어버렸다. 손익분기점을 넘는 흥행은 사실상 이뤘다고 봐야한다.
그렇다. 이 예측되는 결과에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조정석이다. 앞서 말한 판타지급 사전 설정, 조정석이기에 가능했다. 이미 2006년부터 조정석은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을 맡았었다. ‘파일럿’의 주인공 한정우가 한정미가 되는 여장은 조정석에게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여장 연기’를 익살스럽게 영화 내내 선보였고 한정우이자 한정미이자 조정석은 존재 자체로 ‘파일럿’이란 영화를 이끌었다. 그 사이사이에 톡톡 튀어나는 ‘조정석표 코미디’는 여전히 관객들에게 유효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으로 돌아가는 한정우의 포효 속에서 드러나는 조정석이란 배우의 가치, 결국 조정석만이 해낼 수 있는, 조정석은 조정석이었다.
무리수로 느껴지는 연출 전개, 와 닿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 등의 단점들이 보여도 조정석이란 배우가 얼마나 연기력이 뛰어난지 확인하고 싶다면 ‘파일럿’을 관람하는데 말리지는 않고 싶다. 여전히 살아있다. 다음 ‘조정석표 코미디’에 대한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