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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삼과 김광석

doublec 2024. 1. 8. 18:42

  2024년의 해가 밝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누구나 새해가 밝으면 희망찬 기운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한다. 시작이란 단어와 의미를 같이하는 또 다른 단어들이 몇몇 있다. 그 중 탄생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 탄생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 남긴 이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새해가 밝으면 왠지 마냥 희망차지만은 않고 그들이 생각나 다소 울적해지기도 한다.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고 현재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굴까?

 

  20071225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광진구민체육센터에서 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전이 개최된다. 도전자는 인도네시아의 헤리 아몰, 챔피언은 대한민국의 최요삼 선수였다. 경기의 양상은 주로 최요삼 선수가 리드를 하면서 진행됐다. 하지만 헤리 아몰은 마지막 12라운드 경기 종료 직전 최요삼에게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적중시켜 다운을 뺏기도 했다.

  이 공격이 치명적이었을까? 경기의 판정은 최요삼의 승리로 결정됐지만 경기 직후 최요삼은 뇌출혈 판정을 받아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렇게 최요삼은 쓰러진 후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 했다. 해가 넘어가고 200813일 만 34세의 나이로 최요삼은 챔피언으로서 세상을 떠났다.

  단순히 이 과정과 이 시야로만 최요삼의 죽음을 알게 된다면 상당히 좁게 바라보는 것이다. 우선 최요삼은 자신의 죽음으로 각막 2, 신장 2, 심장 등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며 세상을 떠났다. 어느 누구라도 죽으며 자신을 다시 한 번 나누면서 세상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챔피언이 삶을 마감하며 새로운 삶을 바라는 이들에게 장기를 기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 숭고함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최요삼의 죽음은 대한민국에서 치러지는 프로복싱 경기 개최의 열악함이 다시 재조명 되는 계기를 가져왔다. 복싱은 312라운드로 치러져 극한의 체력을 요한다. 그럼에도 당시의 경기 사전사후 의료체계가 부실했던 것이다. 경기 직후 뇌출혈 판정을 받은 선수가 경기 전 보다 세밀한 의료체계가 존재했다면 경기 출전이 과연 가능했을까? 16년이 지난 결과론적 후회다.

  새해만 뜨면 최요삼의 두 가지 모습이 떠오른다. 경기를 처절히 임했던 챔피언 최요삼, 병실에 누워 떠나기 직전의 최요삼. 최요삼과 절친이었던 리쌍이 후에 챔피언이란 제목의 추모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최요삼을 기억해야겠다.

 

  199616일은 유독 추웠다고 한다. 김광석의 장례식에 발걸음을 한 당시 동료 가수들의 회고다.

  공식적인 타임라인을 따져보면 김광석은 199616일 새벽 330분 당시 아내 서해순으로부터 최초 발견됐고 20분 뒤 119에 신고 접수 돼 430분이 돼서야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그는 사망한 상태였다.

그가 떠난 지 202416일 기준으로 정확히 28년이 됐다. 30년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기간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김광석을 아직도 여전히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 하는가. 이 여운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광석의 죽음은 김광석과 동시대에 같이 노래한 동료 가수들이나 김광석보다 먼저 음악을 시작한 선배들이나 김광석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 한 근래 대중들에게도 크고 깊게 자리한다. 단순히 그의 죽음에 의문점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러한 점들은 완전히 차치하고 그가 걸어온 삶과 태도, 그리고 그의 음악에 우리가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너무 많이 의존해버렸기 때문이다.

  김광석의 절친 박학기는 김광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대를 초월하여 김광석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들에 김광석의 노래가 필히 자리하여 우리를 맞이하기 때문이라고. 어느 누군가를 처음 사랑하게 되는 때 묻지 않은 짝사랑,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거쳐야만 하는 입대의 순간, 서른이란 나이가 선사하는 이유 모를 여러 무거운 감정,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과거를 돌이켜보는 황혼의 시기까지 김광석은 인생의 길목들에 항상 서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를 누리는 것은 특별한 자격을 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누구라면 김광석의 노래를 차례로 듣고 공감하고 김광석이란 가수에 내심 암묵적으로 고마워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야 말로 떠났음에도 우리가 김광석을 떠나보내지 못 하는 결정적 이유라 할 것이다.

  1월이면 유독 그의 기교 없는 목소리가 그립다. 자살이라는 말로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김광석의 절친들은 김광석은 가장 의지가 강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광석이란 인간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음악이 일어나라고 절친들 대부분이 말한다.

  새해, 1, 김광석, 희망 등의 단어가 딱 들어맞는 노래다. 우리는 음악으로 김광석을 떠나보내지 않고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를 기리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가장 김광석다운 노래 일어나를 들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