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와 ‘삼식이 삼촌’
바야흐로 TV로만 드라마를 보는 시대는 저물었다. OTT라는 세 글자가 세계 미디어업계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이 흐름은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 수많은 변화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배우들이 매체 경계를 직접 허물었다는 점이다.
영화배우, 탤런트 등의 한 분야로 배우들을 한정하는 단어들은 이제 사장(死藏)될 것이다. TV, 극장, OTT 등 미디어를 다루는 매체들이 너무나도 다양해졌고 그 안에서도 채널 등이 나아가 다양해졌기에 이제 배우들은 가릴 것이 없어졌다.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는 작품이라면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 기쁘다. 영화계에서 흥행필수카드로 불리던 대배우들이 OTT 기반 시리즈물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사례에 부합하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던 배우가 둘 있다. 그들은 바로 최민식과 송강호였다.
최민식은 설명하는 행위조차 실례인 현 대한민국의 대배우이자 대배우다. 단순히 흥행작을 넘어서 ‘올드보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명량’ 등으로 특정시대 한국영화의 방향성을 책임지던 배우가 바로 최민식이었다. 그래서 최민식이란 배우의 작품행보는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그러던 그가 2022년 12월 돌아온 작품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였다. 그것도 입지를 서서히 넓혀가던 또 하나의 OTT,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하는 ‘카지노’라는 드라마였다. ‘범죄도시’로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강윤성 감독의 연출 위에 손석구와 이동휘 그리고 1997년 ‘사랑과 이별’이라는 MBC 드라마 이후 25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오는 최민식까지, 화제작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최민식이래도 20년 이상 떠나있던 드라마 제작 프로세스에 과연 단번에 적응하여 또 한 번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을까? 이 대답에는 당연히 남기는 데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겠다. 강윤석 감독 특유의 폭력과 범죄와 오락이 뒤섞여있는 연출 위에서 최민식은 맘껏 자신의 연기 내공을 쌓아올렸다. 가히 최상위 기술적 생활연기를 내뿜는 최민식은 자신의 캐릭터 열전에 ‘차무식’이라는 인물을 새로이 추가했다. 차무식은 완전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카지노’라는 드라마를 직접 이끌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최민식이래도 최민식은 최민식이었다. 1초라도 그를 의심한 모든 이들에게 경지에 오른 연기력으로 빅엿을 날린 작품이 ‘카지노’라 할 수 있겠다.
최민식의 완벽한 드라마 복귀로 이제 더욱 드라마와 영화 경계가 흐릿해질 것이다. 드라마면 어떻고 영화면 어떠하리. 좋은 배우가 좋은 연기력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을. 이 만고의 진리를 최민식에 이어 또 한 명의 대배우가 바통을 이어 받아 증명했다.
최민식은 25년 만에 드라마 작품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 배우는 최민식과는 상황이 완전 달랐다. 34년 연기 경력에 첫 드라마 필모그라피였다. 199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하여 2024년까지 대한민국의 영화계에서 최민식에 버금가는 굳건한 기둥으로 존재했으며 이제야 드라마에 데뷔하는 배우, 그는 바로 송강호였다.
역시 디즈니 플러스였다. 제목은 ‘삼식이 삼촌’이었다. 주변 사람들 하루 3끼는 안 거르게 해준다는 박두칠의 별명인 삼식이 삼촌. 이 박두칠을 송강호가 맡은 것이다. ‘삼식이 삼촌’ 다섯 글자만 들으면 무언가 순해 보이고 휴머니즘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그래서 송강호가 맡은 거였나? 아니었다. 삼식이 삼촌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정부 수립 초기부터 5.16 군사정변까지 대한민국 정치판 안에서 권력 싸움이 폭발하던 시기, 그 싸움을 뒤에서 세기의 처세술과 모략으로 지휘하던 자가 바로 삼식이 삼촌이었다. 이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 인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송강호 뿐이었다.
16부작으로 이뤄진 ‘삼식이 삼촌’ 안에서 송강호는 항상 중심에 있었다. 그 송강호를 중심으로 변요한, 이규형, 류재명 등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으며 그들의 움직임이 곧 드라마 안에서 대한민국 정부 초기 역사를 표현했다. 그야말로 정치가 폭발하던 시기로 평가되는데 송강호를 중심으로 한 명배우들의 열연은 ‘삼식이 삼촌’을 보는 것만으로 대한민국 정부 초기 역사를 간접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디즈니 플러스라는 OTT였기에 흥행과 대중 확산의 한계가 다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색다른 느낌의 시리즈물을 바란다면, 드라마 안에서의 송강호는 어떠한 느낌인지 궁금하다면, 드라마 안에서 송강호와 다른 배우들의 합이 어땠는지 궁금하다면, 2024년의 예술 시점에서 대한민국 정부 초기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하다면 ‘삼식이 삼촌’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최민식에 이어 송강호의 이러한 드라마 발자취는 분명히 더욱 대한민국 미디어업계에 긍정적 발전요소가 될 것이다. OTT업계의 시장도 성장할 것이며 이에 따라 비례하여 영화업계도 질적 발전을 꾀할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은 최종적으로 미디어업계 수준 성장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좋은 문화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문화강국임을 입증할 수 있다. 부디 대배우들이 보다 더 활발히 다양한 미디어업계 진출을 결심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