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명량'과 '한산'과 '노량'

doublec 2024. 4. 26. 14:59

  우리나라 국민들은 알까? 428일이 어떤 날인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이념의 갈림 없이 누구나 인정하고 숭배하는 인물 중 한 명이 이순신이다. 그렇다. 428일은 이순신이 태어난 날, 충무공탄신일이다.

  세종대왕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자 성웅이 곧 이순신일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입지 덕에 문화예술계에서도 이순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들이 가장 강렬히 기억하고 있는 이순신 소재 예술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영화 명량’,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일 것이다.

  단순 관객동원 수치만 보더라도 명량은 우리나라 영화계 역사상 최대 관객 동원 숫자인 17,616,141, ‘한산7,266,340, ‘노량4,572,861명으로 세 작품 합산 약 29백만 명이 넘는다. 세 작품으로 김한민 감독은 약 3천만에 가까운 관객들을 동원한 것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현재 대한민국에 있어 이순신이란 인물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곧 다가오는 충무공탄신일에 이 세 작품을 접하는 것도 나름의 이순신을 기억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이 세 작품은 어떠한 매력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명량’, ‘한산’, ‘노량을 본다면 극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개봉한 영화는 명량이다. 실제 역사적 순서상으로는 이순신 3부작 두 번 째 영화인 한산의 소재가 된 전투, 한산도 대첩보다 5년 뒤의 역사, 명량 해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명량 해전은 단순히 형용하면 울돌목의 물살을 절묘하게 파악해 조선 수군 13척의 판옥선으로 일본 수군 133대를 물리친 전설적이고도 미스터리한 해전이다.

  영화적 시선으로 명량을 바라본다면, 솔직히 이후 만들어진 한산노량보다 비교적 완성도는 떨어진다.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하고 싶은데, 우선은 백병전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일본 수군의 주된 작전인 백병전을 하지 않으려고 이순신은 울돌목의 물살을 절묘하게 이용했고 그 작전으로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이 맹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는 영화 후반부부터 백병전이 활발히 시작된다. 이 역사적 어긋남부터 영화에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역사영화의 본질을 김한민 감독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두 번 째로 전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그리 전투양상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전투를 담는 일종의 전쟁영화라면 이는 쉽게 그리고 명확하게 그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지점이 흐릿하다. 오히려 전투양상의 명확도는 또 하나의 이순신 소재 대표 작품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더 잘 그려졌다.(물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철쇄이용설을 차용해 신뢰도를 잃었지만)

  그렇다고 명량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명량은 영화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투에 출정하기 전까지 이순신의 고충과 고뇌를 그린 전반부와 전투가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후반부 이렇게 둘로 나뉜다. 오히려 전반부가 더 깊이 있었다. 이순신은 어떠한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전투에 임했는지를 이순신을 흠모하는 후손들로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전투를 잘 하는 이순신으로 그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투 전의 이순신 내면까지도 이해함으로써 연이어 명량 해전에 대한 서사도 덩달아 인과적으로 이해가 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후반부의 해상전투장면은 백병전 연출만 제외하고서는 그 자체만으로 대한민국 영화계가 다시 쓰이는 듯 했다. 이정도 광활한 전투장면을 본 적이 없었으며 다음 만들어진 한산노량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기대케 했다.

  그리하여 명량은 앞으로도 갱신되기 힘들 듯 한 역사적 관객동원 수 17,616,141명을 동원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일지라도 아주 인상적인 이순신 3부작 첫 등장임에는 분명했다.

 

  다음은 한산이다.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했던 최민식에 비해 젊은 비주얼의 박해일이 이순신을 연기했다. 새로운 얼굴의 이순신이 이끄는 한산이었을지 몰라도 분명히 명량보다 나은 영화로 개봉된 한산이었다.

  ‘한산을 다 보고 느낀 점은 명량보다 확실한 오락영화였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명량에서의 허점들이 메워진 느낌이었다. 먼저 전쟁의 양상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일본 수군이 조선 수준을 쫓는 과정, 조선 수준의 학익진이 펼쳐지는 과정, 거북선이 일본 수군을 향해 충파하는 순간까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아도 보는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전쟁 양상이었다. 이렇게 눈으로 일단 쉬우니 오락영화로써의 기본적 매력은 갖추게 됐다.

  ‘한산의 부제는 용의 출현이다. 용은 무엇인가? 거북선을 의미한다. ‘명량마지막 부분에서도 섬뜩하게 등장하는 거북선을 선보여 차기작 한산에서 반드시 거북선을 등장시킬 것이며 이 지점이 한산이 거는 승부수일 것이라고도 거의 공언한 셈이었다. 그래서 한산은 거북선을 효과적으로 영화 안에서 그렸을까? ‘한산의 주연은 이순신 역의 박해일과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의 변요한, 그리고 거북선까지 더해야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각별하다. 거북선의 충파 시 작은 머리 걸림 문제, 이를 수정하는 나대용의 고민, 전투에서 적절히 사용하는 이순신의 지휘까지 한산안에 거북선의 서사는 충분히 깔려있었다. 그 서사 끝에 일본 수준을 향하여 파괴력 있게 충파하는 거북선의 카타르시스는 또 한 번 한산이란 영화의 오락성을 끌어올렸다.

  명료한 전쟁양상 연출, 기대했던 거북선의 활약상 연출 마지막으로 당연히 담겼던 박해일의 얼굴로 표현된 이순신의 결단 연출까지 한산은 이순신 3부작을 대표하는 영화를 넘어서 이순신을 소재로 한 모든 예술작품 중에서 대표될만한 작품으로 손꼽혀도 된다.

 

  마지막은 노량이다. 부제는 죽음의 바다. 당연히 이순신이 전사했던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 노량 해전을 소재로 했다.

노량의 과제는 명확했다. 마무리였다. 이순신 3부작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 안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노량 해전 안에서의 이순신의 마지막을 잘 그려야 했다. 누구나 다 아는 결과를 영화적으로 잘 그려야 한다는 것, 세상 어느 부담감보다도 무거웠을 것이다. 이 엄청난 부담을 가지고 결국 노량은 완성됐다.

  결과적으로 노량은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의 아픈 손가락이 되고 말았다. 손익분기점이 무려 720만 명 관객동원이었다. 어지간한 상업영화 대작 아니고서는 산출되지 않을 높은 손익분기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노량 해전을 연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312억 원의 제작비였다고 생각된다.

  애초에 손익분기점이 높은 점도 있지만, ‘노량한산과 달리 오락영화가 가지는 매력을 거의 완전히 뺐다고 보인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마지막을 그리며 보다 숭고히 영화를 마무리 짓고 싶은 김한민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라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보다 대중적인 영화가 되지는 못 했고 영화 자체가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진행됐다.

  이 자체가 노량이란 영화의 한계점이자 매력이다. 이순신이 마지막 전투에 임하기 위해 보이는 태도를 알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의미 있게 다가왔을 것이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러 노량을 봤다면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이 양면성을 가지고 세 번 째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의 얼굴로 노량은 만들어졌다.

  명량 해전이나 한산도 대첩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노량 해전은 대규모 전투였다. 임진왜란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전투기도 했으며 다시는 일본이 조선을 넘보지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치러진 노량 해전이었기에 이전의 전투들보다는 확실히 대전(大戰)이었다. 그리고 밤에 치러진 전투였기에 결과적으로 노량 해전을 명료하게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연출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 안에선 노량 해전의 거시적 흐름만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한계 때문에 면밀히 전투의 양상을 영화로 즐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역설적으로 기대하고 있던 이순신의 전사 순간에 대한 묘사. 김한민 감독은 직접성과 선정성을 의도하여 피한 듯하다. ‘노량안에서 이순신이 직접 소총에 맞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순신이 어느 부분에 어느 복장으로 저격당했는지는 역사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하기에 연출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부상당한 채로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결국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내서는...”라는 말과 함께 이순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 연출에 대해 나는 김한민 감독의 선택을 지지하고 싶다. 이순신의 죽음은 누가 쏜 총에 어느 옷을 입고 어느 부위 맞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노량 해전을 대하는 이순신의 마음가짐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김한민 감독은 집중한 듯 보였고 결과적으로 이 울림이 노량이라는 영화, 이순신 3부작의 마무리를 아주 긍정적으로 짓게 했다.

  오락성을 거의 배제하고 이순신이란 성웅의 숭고함에 더욱 집중한 김한민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고 볼 수 있으며 노량에서 느껴지는 마지막 감정은 우리가 명량에서부터 한산을 거쳐 노량까지 9년간의 여정을 마무리는 감정과도 흡사하다. 단독적인 작품으로 보아도 노량은 꼭 볼만한 영화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