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2월 4일부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이하 ‘태계일주 3’)가 막을 내렸다. 다소 시청률은 지난 시즌들보다 떨어졌어도 화제성은 여전했다. 특히, ‘2023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기안84의 대상 수상을 비롯해 총 7관왕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방영 중에는 MBC 간판예능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OTT 시장 성장으로 인해 TV 예능이 고전을 면치 못 한다고 평가받는 요즘에, 지상파 채널 MBC의 예능 태계일주는 굳은 화제성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그 요인은 무엇일까? 그 요인은 10여 년 전 같은 지상파 채널 KBS의 최강자였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대 초반 개콘은 코미디의 명맥을 굳건하게 잇고 있었다. 지금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 20%를 넘기기도 했고 평균적으로 15%이상은 유지하고 있었다. 가히 1박2일과 함께 당시 KBS 예능의 두 기둥이었다. 개콘의 방영 요일은 거의 일요일이었다. 그 때를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월요일 사람들 간의 인사를 간간히 “너 어제 개콘 봤어?”라는 질문으로 대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자. 어떤 요인에서 당시 개콘은 국민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물론 많은 코너들이 있었기에 모든 코너들을 시청자들이 지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르고 코너마다 추구하는 코미디 스타일이 달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당시 개콘에서의 인기 코너들이 지키면서 관통됐던 코드를 굳이 표현하자면 ‘Non-Negative’다. 즉, 비방하거나 불편하지 않는 쪽으로 대부분의 코너가 방향을 잡았다는 점이다. 상황 성정을 독특하게 했던 ‘비상대책위원회’, 공감개그의 선두주자였던 ‘네가지’, 역설의 연기가 백미였던 ‘생활의 발견’, 민망한 신체개그였지만 유쾌하게 푼 ‘발레리NO’까지 당시 개콘의 코너들은 수위가 높거나 표현이 거칠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코너는 극히 적었다. 이 코드가 코너 대부분 기저에 존재했기에 일단 시청자들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부담 없이 TV에서 방영되는 개콘을 즐겼다.
지상파 채널의 프로그램은 심의에 민감하다. 물론 일각에서 이 지점을 비판한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소재에 제약만 둘 것이냐고. 지상파 심의라도 유해질 필요성을 역설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제약을 둔다고 해서 건강하게 유지될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2010년대 개콘은 저력을 보여주기는 했다.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Non-Negative’ 코드로도 지상파 예능 시장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역사적 증거를.
이후 개콘이 몰락의 징조를 보이며 휴지기를 가지기도 했다. 개콘을 비롯한 여러 지상파 예능 강자 방송들이 마지막 회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방송 콘텐츠 시장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방송 콘텐츠 소비자들은 TV로만 방송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OTT라는 TV 시장보다 몇 십 배 광활한 세계가 열려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TV라는 매체는 입지가 좁아질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고 TV 지상파 채널이 당장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 콘텐츠는 계속해서 제작될 것이며 OTT 시장과의 협력으로 생명을 이어나가며 변화무쌍한 현 상황을 타개하고 있다. OTT 시장이 개척되기 전에 론칭돼 안정적인 시간대에 자리잡고 있는 예능 말고는 현 시점에서 새로이 오리지널 TV 예능이 살아남기란 너무나도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태계일주’ 시리즈는 살아남았고 예능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됐다.
앞서 2010년대 개콘에서 발췌될 수 있었던 ‘Non-Negative’ 코드가 ‘태계일주’ 시리즈에서 역시 발췌된다. ‘태계일주’가 세 개의 시즌을 거치며, 보편적인 상식을 벗어나 방송의 존폐를 가늠할 장면이 송출돼 크게 논란을 겪은 적은 없다. 기본적인 ‘Non-Negative’ 정서 위에 기안84를 비롯한 빠니보틀, 덱스, 이시언이 각 국가를 여행하며 눈으로 보기에 예쁘기 만한 그 국가의 관광지만을 단순하게 소개하는 것이 아닌, 그 여행지의 고유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여행 욕구 그 이상의 감정을 여럿 선사했다. 또한 여행지기에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출연진들 간의 우정도 담담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우리가 차마 느끼지 못 했던 자연환경을 간접경험 하는 것을 넘어, 출연진들이 각 여행지에도 온전한 언어소통이 되지 않음에도 해당 문화권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인식도 전달해준다. 이 지점에서 ‘태계일주’를 보는 시청자들은 기존 여행 예능과는 다른 차별점을 명확하게 느낀다. 그 차별점의 피어날 수 있는 기본적 요인은 차이에 대한 거부와 비난이 아닌, 앞서 말한 출연진 모든 행동에서 느껴지는 존중이란 정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극적이거나 나쁜 정서를 온전히 배제하여 채워진 ‘태계일주’는 결국 시청자들을 불러 모으는데 장애가 없었고 화제성이 확산되는 데도 막힘이 없었다. 갈수록 표현의 수위가 높아지며 휘발성이 높은 소재가 주로 선택되고, 심지어 사후심의가 적용되는 현 OTT 세계에서 유의미한 발자국을 태계일주는 낳은 것이다.
시장의 흐름이 확연하기에 이제는 ‘선을 넘는’ 콘텐츠 제작이 필요하다는 혹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힘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성만을 따른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개콘과 태계일주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두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정서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맵고 짜고 단 게 답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