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 2023년 11월 11일 시작해 2024년 3월 10일부로 막을 내렸다. 여러 가지 의미로 주목을 끌었던 사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KBS 사극제왕인 최수종이 강감찬 역을 맡아 돌아왔다는 점, 쉽게 접하기 힘든 고려사를 소재로 했다는 점, 사극명가 KBS가 정통 사극을 다시 제작한다는 점 등 때문에라도.
‘고려 거란 전쟁’이라는 드라마의 완성도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고려 거란 전쟁’은 숨은 한 가지 의의를 낳고서 종영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 했던 구국의 영웅, 양규를 대중들에게 제대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양규의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한국사 위인이 한 명 있다. 그가 바로 이순신이다. ‘감히 이순신에?’라는 일종의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법하다.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가슴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순신이란 인물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교과서 교육 수준만 듣고서라도, 관심이 생겨 더 면밀히 발자취를 따라가 보더라도 이순신이란 인물은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등장할 수 없는 성웅임은 확실하다.
이순신이 출전했던 모든 전투를 따져보고 평가를 해본다면 시각에 따라 다른 의견이 생길 수 있겠지만, 23전 무패의 신화는 모두가 동의한다. 단순히 의미 없는 무패가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일본육군을 위한 해상보급로 차단, 남해 해상권 탈환,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확실한 응징까지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넘어 조선사를 넘어 한국사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이런 압도적인 행적 안에서도 이순신은 ‘애민’을 실천했다.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이순신 출정의 기준들 중에서 전투에서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는지를 반드시 따졌고 평시에는 백성들을 향한 구호활동과 식량비축을 자신의 업무에서 주요점으로 두었다. 이러한 이순신의 애민이 백성들에게도 전달돼 이순신 전사 후 이순신의 장례운구에 이순신 관할지역 백성들은 그 장례운구를 붙들며 “공이 실로 우리를 살렸는데, 공은 이제 우리를 버리고 어디를 가시오”라며 통곡하기도 했다.
물론 이순신만큼 대중적인 한국사 위인도 없다. 수많은 대충매체 작품들로 다시 태어난 이순신이기에 유독 깊게 장황히 기술하는 것도 우스울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사 구국의 영웅 후보군을 떠올릴 때 이제는 이순신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 이순신과 닮은, 이순신 이전에 양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거란 전쟁’의 전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그 지점이 바로 극중 주로 서북면 도순검사로 불리는 양규의 죽음이다.
물론 ‘고려 거란 전쟁’은 현종과 강감찬, 이 둘이 이끄는 사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1명만 더 주연급으로 꼽자면 두 말 할 것 없이 양규다. ‘고려 거란 전쟁’은 전반부 16화까지는 사실상 제2차 여요전쟁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제2차 여요전쟁에서 맹활약을 한 양규의 비중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수치만 보더라도 양규의 활약을 단번에 믿기란 쉽지 않다. 당시 거란군은 최대 40만 명으로 추산되는 병력을 이끌고 고려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 와중에 양규는 자신만의 게릴라 전투 능력을 발휘해 끊임없이 거란군을 괴롭혔고, 특히 흥화진 전투에서는 약 3,000명으로 거란군의 발을 묶어 남하 속도를 낮추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양규는 소수의 병력으로 대규모 상대 군을 교란시키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했다. 그렇게 양규의 전투능력에 지속적 피해를 입고 질려버려 퇴각을 결정하고 후를 도모하게 되는 당시 거란황제 성종인데, 이 퇴각길에서도 포로로 잡혀있던 고려인들의 탈출 시간을 벌기 위하여 돌아가지 못 할 것임을 알면서도 양규는 유지해오던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오른팔 장수 김숙흥과 함께 거란 성종 친위 본부대와의 전투를 벌인다. 결국 양규와 김숙흥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 하고 마치 고슴도치와 같이 온몸에 화살을 맞아 선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양규의 김숙흥의 죽음을 ‘고려 거란 전쟁’은 마치 영화와 같이 연출하였는데, 감히 ‘고려 거란 전쟁’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이순신의 애민, 가히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양규와 그의 휘하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적 본대에 뛰어들지 못 했을 것이다. 포로였던 백성들을 구출하겠다는 마음, 그 숭고함만이 양규를 끝까지 지탱하게 만들었다.
완전히 잘 만든 사극이라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고마운은 마음이 든다. 우리가 잘 몰랐던, 하지만 알고나면 ‘알았어야 했다’라는 후회가 들게끔 하는 그런 구국의 영웅, 양규를 ‘고려 거란 전쟁’이 다시 제대로 소개시켜줬으니까. 이순신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것이 없다. 하지만 양규는 이제부터라도 알자. 영웅 양규를.